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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낯선 사람에게 말하기

커다란 양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어느 백화점 향초 섹션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초콜릿보다 바닐라 냄새가 더 좋아요”하며 한 백인 중년 부인이 등 뒤로 바쁘게 말하면서 지나간다. 나는 두 향초를 킁킁대며 검토한다. 초콜릿 냄새는 공허감을 자극하는 반면에 바닐라 향기는 왠지 마음을 가라앉히는 느낌이다.   그 여자는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초콜릿 향과 바닐라 향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를 도와주려는 의향이었나. 그녀가 낯선 사람에게 훌쩍 말을 던지고 지나간 것이다.   맬컴 글래드웰의 2019년 저서 ‘낯선 사람에게 말하기(Talking to Strangers)’를 읽었다. 이듬해 한국에서 번역판이 나왔는데 제목을 ‘타인의 해석’이라 해 놓았다는 것을 검색해서 알았다.   저자는 2015년 7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일어난 30세의 히스패닉계 경찰과 28살의 흑인 여성 사이에 일어난 대화 현장을 책의 시작과 끝부분에 상세하게 소개한다.   흑인 여성이 운전하는 차를 뒤쫓아간 경찰은 차선을 바꾸는데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면허증을 보자 한다. 그녀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워 문다. 그가 담뱃불을 꺼 주기를 요구하자 “내가 내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무슨 잘못이냐”며 반박한다. 경찰이 차에서 내리라고 했지만 그녀는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고 차에서 내리라는 것은 불법이다”라며 대든다. 그녀가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되고 3일 후 유치장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수개월 후 경찰은 공무원직을 박탈당하고 그녀의 가족은 정부로부터 19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는다.   사전은 ‘stranger’를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어떤 곳에) 처음 온 사람’으로 풀이한다. 비슷한 말로 여럿을 뜻하는 ‘others, 남들, 타인들’이 있다. 사르트르의 명언, ‘타인은 지옥이다, Hell is other people’ 할 때의 그 타인이다.     14세기 말경 쓰이기 시작한 ‘stranger’는 고대 프랑스어로 ‘외국인’을 뜻했다. 본국인이 볼 때 응당 이상해 보이는 것이 외국인이다. 19세기에 비로소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또 있다. ‘stranger’는 독일어의 전신, 게르만 조어(祖語)에서 ‘guest, 손님’이라는 뜻이다. 전인도 유럽어의 ‘ghos-t-’도 낯선 사람, 손님이라는 의미로서 ‘ghost(귀신)’와 말뿌리가 같다. ‘guest=ghost=stranger’라는 등식이다. 손님=귀신=낯선 사람=외국인=지옥.   글래드웰은 십수 년에 걸쳐 쿠바의 이중간첩을 한 미국 CIA 요원,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게 속아 넘어간 영국 총리 체임벌린 케이스를 거론하며 상대의 행동과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우리의 기본 성품(default to truth)을 역설한다.   당신은 어쩔 것인가. 상대의 선(善)을 믿고 막중한 피해 가능성을 감수할 것인지. 혹은  어린애처럼 낯선 사람을 경계하겠는가. 사랑하는 이성의 ‘디폴트 진실’에 넋을 빼앗기며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입지 않은 것처럼’ 하는 시인 류시화를 상기하겠는지.   누구나 실수가 잦고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사태가 꼬이고 악화하면 어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글래드웰은 지극히 짧은 문장으로 근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마감한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을 나무란다.(We blame the stranger)”  서량 / 정신과 의사·시인이 아침에 초콜릿 냄새 바닐라 냄새 히스패닉계 경찰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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